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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과 현대 과학 비판

헌법에는 한 줄도 없지만 대한민국 국교입니다?

Posted on 2025년 3월 8일 11:11 오후


조선 성리학과 현대 과학 비판

❚ 이기론은 관찰이 아닌 해석에서 출발했다

서양 과학은 경험적 관찰 → 가설 설정 → 실험 → 검증의 과정을 통해 자연을 이해했습니다. 자연 법칙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수정되고 발전했으며, 이 과정에서 객관성과 검증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반면 조선 성리학은 이기론에 근거해 자연을 분석했지만, 그 출발은 자연 현상의 관찰이 아니라, 우주론적 원리를 미리 전제하고 해석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이는 자연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설정된 리理(이치)에 자연을 끼워 맞추려는 성향을 강화했습니다. 따라서 경험적 과학으로 이어지는 길은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 자연을 계측하기보다 의미로 읽으려 했다

서양 과학은 자연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고, 그 움직임과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체계로 만들었습니다. 예측 가능성은 기술 발전을 촉진시켰고, 사회 전체의 생활을 변화시켰습니다.

조선 성리학은 자연을 인간의 도덕적 수양과 조화의 대상으로 바라봤습니다. 해와 달, 비와 바람은 자연 그 자체로 분석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마땅히 깨달아야 할 도덕적 이치의 징후였습니다. 자연을 계측하고 예측하는 대신, 자연을 통한 인간성의 수양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로 인해 과학적 방법론과 기술 문명은 뿌리내리기 어려웠습니다.

❚ 리理는 실험이 아닌 권위로 성립되었다

서양 과학에서는 설령 대단한 이론일지라도 끊임없이 검증을 거쳐야 하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기존 이론도 수정되거나 폐기됩니다. 과학은 결과보다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성리학에서 리는 우주적 질서이자 인간의 도덕적 규범이었습니다. 주자의 해석은 사실상의 절대 기준이 되었고, 이를 부정하거나 수정하려는 시도는 학문적 토론이 아닌 도덕적 반역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로 인해 과학적 탐구에 필수적인 자유로운 의문 제기와 실험의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없었습니다.

❚ 결과보다 ‘의도’가 우선시된 전통

이기론은 자연 현상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치중했습니다. 현상의 '원인'을 찾기보다 '도덕적 해석'을 우선시했고, 이는 자연을 객관적, 실험적으로 탐구하는 방향과 멀어지게 했습니다. 결국 과학은 누적되지 못하고, 윤리적 이상을 반복하는 체계로 정착되었습니다.

❚ 결론: 성리학은 자연을 이해하려 했지만, 계측하거나 예측하려 하지 않았다

조선 성리학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철학적으로 깊이 탐구했지만, 자연을 객관적으로 계측하고 기술적 적용으로 발전시키는 과학적 문화는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결과의 격차가 아니라, 탐구의 철학과 방법론 자체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 대한민국 지폐에 이황과 이이가 남아 있다는 문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폐에 아직도 이황(1천 원권)과 이이(5천 원권)를 남겨두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황과 이이는 조선시대 학문과 사상의 거장들입니다. 그들의 업적은 동아시아 유학 사상의 깊이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관찰과 실험이 아닌 사유와 해석에 기반한 것이었고, 근대 과학 정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과학기술, 경험적 검증, 자유로운 비판과 개방적 탐구를 통해 세계와 경쟁하고 있는 21세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화폐가 여전히 관념적 사유 중심의 인물을 대표로 삼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과학적 탐구 정신보다는 여전히 '권위적 해석'을 중시하는 과거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물 선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어떤 가치관을 미래 세대에게 전하고자 하는가를 묻는 문제입니다.

by willychoi